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르요스 2세 (문단 편집) == 생애 == [[콘스탄티노스 1세]](당시 디아도코스[* 그리스 왕국에서 왕의 후계자에게 붙이던 칭호. [[디아도코이]]처럼 그냥 후계자를 의미한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일 제국]]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동안 부왕이 퇴위하였고, 그리스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협상국에 가담하면서 왕위는 동생인 [[알렉산드로스(그리스)|알렉산드로스]]가 이었다. 애초에 협상국에 참전을 주장했던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총리의 압력으로 양위한 건데, 요르요스 2세가 독일 제국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도 분위기상 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키우던 원숭이에게 물려 패혈증으로 갑자기 죽는 바람에 부왕이 복위하면서 다시 디아도코스가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orges_II_et_Elisabeth.jpg]] 디아도코스 시절이던 1921년 [[루마니아]]의 엘리사베타([[페르디난드 1세]]의 딸이다)와 결혼했으나 자녀가 없었고 1935년 이혼하면서 그리스 역대 군주 중 유일한 이혼남이 되었다.[* 이후 둘 다 공식적으로 재혼은 하지 않았다.] 1922년 부왕이 [[튀르키예 독립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양위하여 즉위하였으나, 재위 중 [[1924년]] 공화정이 생기면서 퇴위했다. 그러나 [[그리스 제2공화국]]은 엄청난 혼란의 연속이었고, 결국 1935년 [[복벽]]으로 두 번째로 재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안니스 메탁사스]] 장군 독재에 눌려 지냈고, 1941년 [[나치 독일]]이 [[그리스 침공|그리스를 침공]]하면서 다시 망명 신세가 되었다. 처음에는 일단 [[크레타]]로 파천했으나, 독일 공수부대가 [[크레타 섬 전투|크레타도 점령]]하면서 [[이집트 왕국]], 이후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종전 후인 1946년 3월 총선거에서 근왕파가 승리하고, 9월 국민투표에서 68%의 지지를 얻어 세 번째로 복위하였다. 하지만 반 년 만인 1947년 서거했는데 하필 그날이 [[만우절]]이라 처음에는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가 없어 왕위는 동생 [[파블로스]]가 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